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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2편)

글쓰기/SF 와 Fantasy (단편)

by 엘뤼알 2020. 2. 11.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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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까지 걸어가는 동안 그녀석은 어울리지 않게 뭔가 초조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누군가를 의식하는  건지 주변을 두리번대거나,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기도 하고...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발생한 이슈가 심각한 문제여서 불안해 하는 것인지.

그래도 그 모습과는 별개로 녀석은 술자리에서 하던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난 기계를 만들었지. 당연히 쉽지는 않았어.

학생일때부터 시도했던 프로젝트인데 계속해서 벽에 부딪혔거든.

그런데 난 그게 더 재미있더라고. 벽을 하나씩 부숴버리는게…

뭐 거의 다 혼자 했지. 그러다 제일 큰 벽을 만났어.

이론적으로는 완벽하게 구성되었는데, 그 처리 속도가 문제였단 말야.”


 무슨 얘기인지 아직은 잘 알 수 없었기에 일단은 잠자코 듣기만 하기로 했다.


 “ 그 속도란 건 내가 도저히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가능해졌지. 최근에 말야.

이런 걸 볼 때면 난 인간이라는 것들의 능력이 한계가 있을 지,

어디쯤이 마지막일지 궁금해진단 말이지.

 내가 보기에도 놀라울 정도라니까. 이런 걸 혁신이라고 하던가?

이 기술의 점프에 가까운 레벨업이 어떻게 가능한 걸까?

인간의 욕망이란게 이토록 대단한 건가.

단순히 호기심의 충족을 위해서는 아닌 듯하고 뭐지? 재산을 늘리기 위해서?

돈이란 건 이리 저리 구르다 보면 늘어나게 되어있을텐데?

온 인류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아니 무슨 이런 말같지도 않은 궁금증이라니.

녀석이 이런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도 궁금해하고 있다니,

애들 장난같은 소리도 아니고 이해를 할 수가 없었지만,

녀석은 얘기를 계속 이어갔다.


 “어쨌든 인간이란 참 신기하단 말야. 몇만년동안 똑같은 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문명이라 부르는 걸 만들었잖아.

그리고는 불과 몇백년도 안되는 시간동안 이정도까지 이뤄내다니 말야.

참 신기해.

그런데 이렇게 인간의 사회, 문명이라 부르는게 점프하듯이

툭, 툭, 튀어오르는 계기가 뭘까?

  인간이 스스로 갑자기 깨우친 걸까 아니면 외부에서 모종의 자극이 있었던 걸까.”


특이한 놈이란 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한낱 이따위 것이 궁금했단 말인가.

뭐라 대답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었다.

그렇게 잠자코 있는 사이 녀석의 집에 도착했다.


 두번째로 가는 집이지만 전혀 적응이 되지 않는 건 여전했다.

이번에는 밤이어서 그런지 집(이곳을 집이라고 표현하는 게 적절한 지는 제껴두더라도) 안에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

집 안에는 녀석의 성격대로 제대로 된 가구도 거의 들여놓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약간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그러면 좀 어떻겠는가.

이제 드디어 내 인생에도 럭셔리한 단어들을 흩뿌려줄 그 문제만 해결하면 된다.

 

 우리 회사가 납품했던 부품은 일종의, 말하자면 송신기 같은 건데 ‘동일한 정보를 지정된 수신기에 1 피코세크의 오차도 없이 뿌려주는 기계’ 랄까. 이 부품과 프로젝트가 어떤 연관이 있는 지 궁금했었는데, 그 의문이 조금은 풀리게 되겠지.


 그녀석의 실험은 그야말로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1) 분석   그리고 (2) 재조립


(1)어떤 물질이든 분자 단위까지 구성 분석이 가능한 기구

(2) 어떤 구성인지만 알면 그대로 재현할 수 있는 기구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은 바로, 왜 모든 걸 다 가진 녀석이 원래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단순히 하나 더 늘릴 뿐인 기구에 관심을 가졌던 걸까 였다.

눈짓만 해도 다 가질 수 있었을 인간인데, 도대체 언제부터. 왜. 였던거지?


 어쨌든 그녀석의 기구는 분석된 물체의 정보를 재구성 장치에 부호화해서 저장하고, 그 정보대로 정해진 속도로 재구성하는 기계일 터였다.

아마도 재구성 속도가 정확하게 제어되지 않으면 분자의 배열 구조가 틀어져버릴 위험이 있을 테고, 아마도 이 문제 때문에 정확한 복제가 되지 않는 것이 그녀석의 문제일 것이라는 게 나의 추측이었다.

 하지만 어처구니없게도 내 생각은 아주 순진해빠진 거였고, 그녀석의 고민은 이런 수준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녀석은 물질의 순간 복제에 성공했다.


 알아낸 분자 배열 구조를 어떻게 부호화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눈앞에서 실제로 만들어지는 물체를 보고 있자면, 그깟 작동원리따위 무슨 상관이겠는가.

 처음엔 단지 놀라울 뿐이었지만, 조금 시간인 지나자 머릿속은 복잡해져갔다.

세상에 하나뿐인 걸작 예술품을 복제해 놓으면 구별해낼 수 있는 전문가가 있을까?

있을리가 없겠지 분자 구조가 동일한데.

남아있는 작가의 생체정보마저 동일할텐데 다를 수가 없겠지.

 이건 그동안 인류가 온 힘을 다해 쌓아온 문명에 대한 반란이었다.

이제 이 세상의 박물관과 경매 시장은 모두 망하게 될까 아니면 엄청나게 흥하게 될까. 원본과 복제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지게 되는 것인가.

아주 유명한 요리사의 기가막힌 요리도 수없이 만들어낼 수 있겠지.


이런게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제 공장이란게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오직 프로토타입까지만 만들어내면 될테니. 대량 생산의 혁신인가. 지금부터 이 지구의 모든 산업은 뒤집힌다. 다시 “장인의 시대”가 오겠구나.

이건 인류 문명의 새로운 도약이 될 수 있는 혁신인가 아니면 지금까지 이뤄온 산업을 모두 무너뜨리는 재앙일까.


하지만 역시 복제란 것은 원본이 있을 경우에만 그 의미가 있는 것.

단순히 하나 더 만든다는 것이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토록 많은 노력과 자원을 쏟아부은 것인지.

 게다가 이건 연금술이 될 수도 없지 않은가.

원자단위, 양자의 영역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분자구조에서 적용이 된다면 금 분자가 있어야 금의 복제가 가능하다는 의미일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겠지.

복제과정의 엔트로피 증가량에 비해 얻을 수 있는 효용이 더 크다고 밝혀진다면 충분히 활용도 가능하겠지만, 이 인간에게 이렇게 이타적인 면이 있을거라고는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대단한 사실을 나에게 털어놓는 그녀석의 의도조차 도저히 알 수 없었고, 나라는 놈의 성공을 기대하고 있던 이 알량한 욕심이란게 어쩌면 이리도 하찮은 짓이었던 건지 이런 경우에야말로 ‘극명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녀석의 관심은 영 엉뚱한 데에 가 있었다.


 “내가 만들어낸 건 진짜일까 가짜일까?”


 “그게 네가 말한 문제였던 거야?”


 “아니 아니, 문제는 아니고 너의 생각이 좀 궁금해서. 당연히 진짜는 아니겠지.

 진짜는 따로 있으니까. 그럼 가짜인건가? 대답할 수 있겠어?”


 난 아직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 진짜인지 아닌지는 누가, 어떻게 판정하는거지? 어차피 인간이 판단할 테고,

이게 진짜이냐 아니냐는 인간에게만 의미있는 문제이겠지. 그렇지?

그런데 인간은 완전한가?”


 “그건, 당연히 아니라고 해야겠지. 아마”


 “그래. 이 필연적인 불완전함을 가진 피조물에 불과한 존재가 뭘, 어떻게 하겠어?”


 이미 스스로의 결론은 내려놓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이토록 흥분하는 녀석이라니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동안 무엇이 이녀석을 감정적으로 만들었을까.

지적인 욕망을 충족시키며, 맹목적으로 덤벼들다 보면 사람이 이렇게 감정적으로 변할 수 있을까.

아니, 보통은 그 반대여야 하는게 아니던가.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버린 인간이 이 놀라운 물건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까. 과연?

 

“ 인간의 역사는 끝이 나지 않는 질문의 연속이었지.

스스로 불완전하기에 완전함을 찾으려 했던 걸거야.

그리고 그 의문의 궁극은 -우리는 왜 태어나서 살고있는걸까.- 일테고. 동의하나?”


“ … ”


“ 난, 그래서 먼저 철학에 관심을 가졌었지.

학문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꽤나 괜찮은 분야라고 생각해.

다만, 내가 원했던 답과는 거리가 좀 멀었지. 조금 많이?

 내가 궁금했던 건 어떻게 가 아니었거든.

‘어떻게’에 대한 답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왜’냐의 답이 될 수는 없잖아?

더군다나, 그 돌고 도는 물음과 답이라니, 난 아주 깔끔하고 명확한 걸 원했어.


 그래서 이 답은 공학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지.

하긴 철학 쪽을 파보지 않았다면 공학을 통해 답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수도 있었겠지. 

뭐 난 내가 하고있는 걸 학문이라 생각하진 않기 때문에 뭐라고 불러야 할 지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중요한 건 이름은 아니잖아?”


 그런데 이 답을 내는 데 이렇게나 집착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얼 지 궁금했다.

내 기억으로는 단지 이쪽 저쪽 기웃거리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그 옛날부터 꽂혔던 문제는 지금까지 파고들었다는 얘기에 이녀석이 인간이 맞기는 한 건지 의문까지 들 지경이었다.

이런 나에게 도움을 받을 문제라는 건 또 어떤 건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 그런데 무슨 문제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 그래. 그랬었지. 조금만 기다려. 이제 얘기해 줄 테니. 

  난 내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기계를 만들었지.

난 인간에게 영혼이라 부르는 무언가가 있는지가 궁금했어. 항상.

그렇다면 인간은 신이 창조한 존재가 맞다는 뜻이 되겠지.

그리고 이 기계를 통해서 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

애초에 물건따윌 복제하는 건 내 관심사가 아니었어. 무슨 필요가 있다고.

 생명이 있는 존재도 그대로 만들어내는 게 가능한지가 내 유일한 의문이었지. 그리고, 그 문제 때문에 아직도 골치가 아픈 거고.”


  “ 그럼 이제 복제를 해 보려고…?”


 “ 아, 그건 아니지. 이미 했으니까.”


 이 말은, 생명체를 복제를 했다는 건가? 그러면 도대체 문제란건 뭔가?

난 무슨 답을 원하는 건지 혼란스러웠고, 그녀석은 오늘 만난 이후 처음으로 씨익 왠지 기분나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똑같이 생긴 고양이 두 마리가 각각 담긴 상자를 보여주었다. 

 이 인간, 도대체 무얼 만들어낸 건지.

아니 바로 그 당시에는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었고,  이런 결과 까지 얻어냈다면 원하는 건 다 이뤘다는 뜻일텐데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인지, 날 불러낸 이유는 뭔지…


 “ 동물들은 여러번 해봤지. 매번 제대로 됐어. 그러니 이제 드디어 때가 된 거지.”


 “ 그렇다면… 설마… 날 부른게…”


 “ 아, 아니 아니. 그럴리가 있겠어. 내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인간을 사서 실험대상으로 삼을 수는 없지. 그리고 네가 돈따위에 팔려서 실험대상이 되려고 할 리도 없을테고. 그렇지?


  게다가 인간 실험도 이미 했거든.”


 그녀석은 거의 얼이 나가버린 나를 보며 자세를 고쳐 앉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 난 철저한 무신론자였지. 바로 얼마 전까지는… 그런데 신은 정말로 존재하는 건지도 모르겠어.

 내가 긴 시간을 바쳤던 실험은 성공한게 맞지만, 내 이론은 틀려버렸고 내 머리속은 전보다 더 복잡해지기만 했거든. 

 내 문제는 이거야.”


녀석은 잠시 뜸을 들였고, 난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난 나를 만들었어.”


“뭐라고? 아니 무슨… 진짜야? 아니 그럼…”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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